넷째 날에


 1
 어제까지는 견딜 만했고
 그래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넷째 날부터는

 그대, 실신한 사람의 핏기 없는 손바닥
 구름과 비가, 보다 더한 어떤 것이
 닥쳐올 것만 같아요 수로 같은 손금
 누구의 것도 아닌 웅덩이로 이어져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빛나는 바닥을 우리가 상상해보건대
 그것은 말씀으로 가득한 지옥일까
 그대는 그 위에 나타나 미끄러지는 별과 달과
 그보다 더한
 우리로, 기절에 다다라
 요청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는 날들이
 이제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돼
 함께 팽개쳐진 그대는 그대들, 글자처럼
 그날은 평온한 날
 아무 짐승이나 껴안아도 되는 날
 번개가 떨어지지 않는 우리 골목의
 넷째 날

 넷째 날에
 그 집 개는 배를 주리거나 뼈를 땅에 묻고
 비가 내리거나 아니면 맑고
 책이 펼쳐지고 뼈가 부서지고
 멀리서 피도 남기지 못하고 타버린 이들에게
 평화, 평화 있으라 외치며
 넷째 날에 그대가
 평화! 대문을 차며 집으로 들어서
 네 발로 선 개와 먼저 마주치고
 굉음, 흐리지도 않은데
 정원 잎사귀들에 물방울이 먼저 맺히고
 깨어난 우리가 현관에서 머리를 내밀면
 너희를 낳은 이들은 여기에 없어, 아직이야?
 이적?
 아직이냐고
 우리는 읽던 책의 읽던 곳에 손가락을 끼운 채 아직이라고
 이적이라고?
 아직이라고
 번개 치는 외국에 계신 세대가
 돌아오지 못하는 넷째 날에 개는 그 집의
 개집 속에서 불길한 꿈을 꾸고
 동상처럼 분명하게 꾸고, 넷째 날에

 비는 잘 내린다
 창공을 자전이 밝힌다
 밝은 곳에는 염원 있으라
 아닌 곳에는 아니고
 빗속에서 세계가 구부러진 입술을 여닫음, 아우으, 므으브, 여닫음과 같이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그대의 손끝 지문에 도는 물기가
 불을 상상하는 우리의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는 사이
 밤과 비는 잘 내린다 나라에
 각 나라 바깥에
 새벽빛이 고일 때까지
 상앗빛 싹들이 앞 세대의 관 속을 채워도
 울지 말아라 앞 세대야 억울하다고, 억울하다고
 군대 같은 빗줄기를 앞세운
 새벽은 제왕
 그것도 끝없지는 못한데

 넷째 날에
 그대가 우리 입을 막고 무슨 소리를 낸다
 근사한 소리, 입술에 방울을 단 듯이
 구전되지 않을 설화를 위해
 공중에 새 서약을 새기듯
 목덜미들 사이로 서로를 몰아넣으며 서로의 입술들을 만지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웃다가, 밀다가, 옷들을 주워
 껴입기 시작하고 뒹굴며 일어나고
 날리는 재는 무엇이 불탄 탓?
 기억에 없다 믿을 수 없이 뜨거운 미래가 이 사이에
 쏟아져 내려 넷째 날에, 옛꿈보다 세찬, 모두 맞는 꾸지람 같은 것, 언제든 진실과 머물지 않았던
 그대, 그대는 천구, 그대는 지리, 그대는 그대들

 2
 그대가 다 자랐기 때문에
 태어난 도시로 돌아가야겠다 그대의 빈 얼굴이 찍힌 바랜 사진을 들고
 그대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가야겠다 나라의 수도를 거닐다 사라진
 불덩이 같은 이마를 지닌 다른 젊은이들처럼
 전부 그대가 다 자랐기 때문에
 역사에 가야겠다 가서 그대의 얼굴을, 그대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선로에 던져버리고
 지금이 몇 년이지?
 순환선 열차 앞에서 망설여야겠다
 푸른 자갈밭을 상상하는
 넷째 날에

 넝마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배신당하기 직전, 넷째
 날에, 약속된 대로 우리는 헤어지기 직전, 귀신의 땅에서 귀신 없는 땅에서
 그대가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판자를 들고 나뒹굴기 직전
 흙더미가 일어서기를 기다려보아도 그럴 리 없다 우리는 자연으로 깨닫는다 끝끝내, 누구에게도 소리 안 지르지 못하면서, 없는 발로
 뒤엉킨 발과 손으로, 슬픔을 바랄 수 없는 것과 같이 더는 행복도 바라지 않는, 귀퉁이를 한가득 물고 우리는
 그대로 쫓겨나기 직전, 넷째
 날에

 터널과 그날 지나 그해 겨울을 지나
 터지는 끝에서 미소 짓는 것을
 알아? 공중의 입아귀를, 흰 빛살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오늘이 닥쳐왔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 듣고 있는 것을 알아?
 항상 있다 가장 나쁜 곳에 가장 옳은 것이, 그리고 나머지는 나머지들, 그날아
 손을 흔들 때 너무 먼 곳의 폭발, 앞으로 오래 저편에서 타오를 구멍 같은 해도
 끝없지는 못하고
 닫힌 귓바퀴에 떠돌고 있어 링, 어둠 속에서, 링, 커져가는 풍광, 링, 링
 보고 있는 것을
 알아, 링, 날로부터의 해방, 무늬로부터의
 넷째 날에

 더는 시각을 기다리지 않고 우연한 얼굴을 그리지 않는
 알 수 있을까 파랑 가운데
 맞물려 깨진 골통과 선로에 흘러내리는 색채, 선한 명령, 맞는 인도를 기약 없이 기대하는 우리 죽는 일로의 계속 소환과 암전을, 도시의 갑자기 무너질 곳을 찾아 도박하듯 떠돌지 않고
 바닥을 더듬다 긁는 손길에 발길을 포개며
 알 수 있을까, 넷째 날에
 태어나는 일

 3
 그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잠에서 깬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생각해봐도
 그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고개를 숙이고 우리 속으로 가라앉으며, 누구였을까 옆에 앉은 그대가 뜨거운 숨으로
 좋아하는 사람 있어?
 라고 물었던 것은? 있습니다, 흉곽 속으로 싸늘한 손을 밀어넣으며, 우리 감관에 그대 아름다운 혀가 일렁이며 뻗쳐 밀려들었던 일, 이것은 탐사야, 천문이야……
 누워 생각해보면, 이제 와 그대들의 손을 붙들어 펴볼 수 없고, 거기 금빛 사과잼을 쥐고 있었을까
 무슨 뜻이었을까, 있습니다, 꿈자리는 향기롭고 해골 속은 영영 깜깜하다 눈을 까뒤집어도 그대는 없다 그대의 형태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 말고는, 말씀 말고는, 우리는 내일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대는 절대로 고개 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대와 만난 적이 없다 우리는 외로운 세계가 꾸는 꿈
 그대는 속삭이는 그대들
 넷째 날에
 누구와도 우리는 암흑의 사상을 나누지 않았다